이번주에 본 영화

낚였다 2006. 8. 19. 00:11
이런 제목을 달려면 주말이 제격이겠습니다만 내일은 시간이 좀 부족할 듯 해서 패스, 오늘로 땡깁니다.
이번주에 본 건 <길버트 그레이프>, <베니와 준>, <유령 신부>, <도니 브래스코>, <블로우>. 여전히 조니 뎁 시리즈로 가는 중입니다. (아니 공부는 언제 해?) (...)

이로써 현재까지 조니 뎁 출연작을 열세 편 봤는데,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보고 싶은 게 있는가 하면 한 번으로 족하다 싶은 것도 있네요. 조니 뎁과는 상관 없이 이야기 자체가 마음에 드는 영화가 있고 조니 뎁을 본 것에 만족한 영화도 있었습니다. 아는 것도 없거니와 잘 돌아가는 혀와 날카로운 분석력 같은 건 없는지라 평을 하고 싶어도 못 하겠고, 그냥 '그 영화는 이러이러했다' 라고 제 취향을 드러내는 정도의 단어만 늘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아 감히 길다란 감상조차 쓰지 못하겠습니다. 젠장.;


어쨌거나 다시 보고 싶은 거라면.. <캐리비안의 해적 : 블랙펄의 저주><가위손><네버랜드를 찾아서><초콜렛><프롬 헬><길버트 그레이프><도니 브래스코><블로우> 정도.


<캐리비안의 해적>은 블록버스터답게 진지하게 뭘 생각할 필요 없이 조니 뎁 하는 대로 휩쓸리면서 즐거워할 수 있는 게 좋더군요. 제 해적의 로망도 만족시키고...*-_-* 잭 스패로우는 보면 볼수록 참 기찬 캐릭터란 생각이 듭니다. 그런 작자를 구상해냈을 뿐만 아니라 직접 표현해 보여주는 저 배우는 뭐랄까 진짜..!;;;


<가위손>이야 두 말하면 입만 아프고.. 솔직히 제가 본 몇 개 안 되는 팀 버튼 감독의 영화들 중에서 이게 제일 기괴하고 제일 몽환적이고 제일 마음에 듭니다. 강아지마냥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don't go에서 good bye까지, 때로는 얼떨떨해 하고 때로는 무서워하고 때로는 분노하는 에드워드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처음에는 호의를 보이다가도 자신들과 같지 않은 그를 결국 몰아내는 사람들의 태도에 정말 슬퍼졌습니다. 반면 같은 감독의 <슬리피 할로우>는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이 좀 재미 없었다는 느낌입니다. 목 없는 기사의 전설 자체에 뭔가 살을 더 붙이면 좀 더 재미있고 유별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찰리와 초콜렉 공장>의 경우에는 애들 손봐주는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다 움파룸파와 윌리의 관계가 대단히 거북해서 이야기 자체의 재미를 그다지 느끼지 못했습니다. 벌레를 먹다가 공장에 취직함으로써 그렇게 원하던 카카오를 손에 넣었다라, 그거 산업혁명 내지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와 그다지 차이가...? -_-;


<네버랜드를 찾아서>는 제 스스로 평소 피터팬 증후군 비슷한 게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저만의 상상을 즐겨서 그런지 여러군데에서 공감하며 봤습니다. 저는 항상 극중의 제임스 베리처럼 저만의 네버랜드를 갖고 싶거든요(실은 여럿 있습니다 껄껄. 이만하면 세계 최대의 땅부자 *-_-*). 하지만 제 현실은 피터가 바라보는 그대로입니다. 아놔.. just believe란 말이 그렇게 억장 무너질 수가 없더군요. 역시 저는 제 상상을 즐기며 적당히 모나게 살고 싶은 모양입니다. 한편으로 아역 중에 삘 꽂히는 어린이를 봤습니다. 프레디 하이모어라고요? 다코타 패닝과 더불어 장래가 기대되는 꼬맹이입니다.


<초콜렛>은 마음이 묵직하니 울적할 때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느긋하니 여유로운 느낌이 있습니다. 나이 지긋하니 이제 슬슬 과거를 돌아볼 오륙십대에 접어든 어르신께서 인자하게 웃으며 자신의 인생 중에 있었던 경험담 한 토막 풀어놓으시는 기분이랄까요. 주의할 것은, 조니 뎁이 아니라 초콜렛 가게 주인 비앙과 시장님한테 집중할 것! 버티는 비앙과 쫓아내려는 시장간의 알력 다툼이 또 재미가 쏠쏠하더군요. 에.. 뎁의 경우에는 기타 연주씬이 기억에 남는군요. 엔딩 크레딧을 보니 마이너 스윙 연주자 명단에 당당하게 기타리스트로서 이름을 올렸더이다. 언젠가는 그가 롹커로서 영화를 찍을 지도 모를 거란 생각이 듭니다(아니, 실은 무지 기대하고 있습니다*-_-*).


<프롬헬> 역시 조니 뎁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는 게 좋은 영화라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는 엄청난 피가 흐릅니다. 슬래시무비마냥 뿌려대진 않지만 영국의 어두운 뒷골목 포석에 젖은 것은 다 피가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진득하게 흐릅니다. 잘 배운데다 이성적으로 침착하게 미친 사람은 눈 먼 칼 휘두르며 발광하는 실성자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섭습니다. 단지 오점 하나를 감추기 위해 희대의 살인마를 만들어내고 그 사람을 조용히 폐기처분하는 저들이, 저는 정말 무섭습니다. 애벌린이 아편중독자인 건 자신의 예지력을 돋우는 용도 외에도 그런 침착하게 미친 사회의 부속품 사이에 찰리 채플린이 타고 돌던 톱니바퀴처럼 낀 처지를 체념한 채 다른 누군가를 도구로 쓰다 버릴 위치를 바라며 살아야만 하는 자의 울분의 표현은 아닌가 싶습니다.


<길버트 그레이프>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대한 제 인식을 백팔십도 바꿔놓은 영화입니다. 아니 대체 이렇게 대단하던 배우가 어째서 지금은 저런...; 어쨌거나, 여기서 조니 뎁의 역할은 대단히 전형적이고 지루하고 평범한 것이지만 그래서 더 어려울거란 생각이 듭니다. 성우분들이 연기하실 때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는 장면은 오히려 쉽고 조근조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까다로워 한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감정을 북받치게 하는 거야 외부에서 적당히 자극을 받아서라도 할 수 있는 거지만 평범한 모습은.. 글쎄, 공기는 항상 주변에 있지만 우리는 공기에 대해 잘 설명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대로 하지 못하면 대단히 어설퍼지고, 배역의 캐릭터 대신 배우의 멋쩍은 얼굴이 깨진 유리가면 뒤로 나올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뎁은 대사도 동작도 없이 얼굴 근육을 짧은 시간동안 미묘하게 이리저리 바꿔보이는 것만으로 시종일관 '길버트 그레이프'로서 지내더군요. 그것도 '아 썅 나라면 그냥 저거 두들겨 패버린다 진짜 뭘 참는 거냐!'라고 절로 흥분하게 만들면서. 굉장했습니다.


<도니 브래스코>는 알 파치노가 워낙 단단하게(그 분 자신은 힘 빼고 털털하게 간 것이겠지만 저는 될 데로 되란 식의 그 지친 눈에서 태산같은 무거움을 봅니다. 이건 야부키 죠의 노가드 전법이 분명합니닷!;;) 버티고 있는 데다 조셉 피스톤이라는 인물 자체가 길버트 그레이프처럼 그다지 푸쉬받는 역할은 아니라 조니 뎁이 좀 밀리는 것 같지만, 글쎄요. 저는 그게 튀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는데. 자연스럽게 영화의 주의가 알 파치노에게 가지 않습니까? 사실 영화의 중심도 도니 브래스코가 아니라 레프티잖습니까. 수십년 적공이 허무한 퇴물 건달이자 죽기 전에 가족에게 하나라도 더 남겨주려고 지닌 것을 모조리 풀어버리는 우리네 어깨 굽은 평범한 아버지 말입니다. 뎁은 자기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고 훌륭하게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야기 자체가 IMF 무렵 공원과 지하철역에 넘치던 아버지들이 연상되어 괜히 쓸쓸해지는, 멋진 영화입니다.


<블로우>는 처음과 끝이 달라서 좀 뭔가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가난이 싫어서 뛰쳐나간 철부지 마약상이었는데 끝은 끝끝내 면회 오지 않는 딸을 기다리며 쓸쓸하게 늙어가는 수감자가 되어있어, 마약이랑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대체 어떻게 연결되는 건가 싶어지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조지 정이라는 실존인물의 이야기지요. 자기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데 무슨 논리적 흐름 같은 게 있습니까. 그냥 '그 때 나는 이렇게 살았다...'라고 덤덤하게 툭툭 털어놓는 거지요. 인생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니 돈보다 귀한 뭔가를 잃어버리고 뒤늦게 후회하지 말자는 주제는 일관되게 잘 이어지더이다. 이 영화도 참 쓸쓸합니다. 그런데 도중에 딸이 나의 전부, 나의 심장, 내 인생에서 뭔가가 확 변했다 어쩌고 저쩌고 팔불출스런 대사를 읊다가 어린 딸네미 안고 부비부비하던 장면은 뎁이 진짜 자기 딸 데려놓고 한 건 아니겠지요. 뭡니까, 은근히 겹쳐보이는 그 장면.-_-;;;;;;;



가만 보니 영화들이 한결같이 사람들 말초신경 찔러대는 흥행감과는 거리가 멀군요. 듣던 그대롭니다. 그렇지만 보고 나면 아 그 영화 참 괜찮았지 하는 느낌은 있네요. 뭐어, 이러면 지화자 자화자찬 되어버리는 건데. 저는 잘 돌아가는 혀도 없고 똑똑한 머리도 없습니다만 영화 한 편 재미있게 보고 멍하니 감상에 젖는 지금도 나름 괜찮은 거 아닌가 싶습니다. 뭔가 영화를 구성하는 것 하나하나를 잘게 분석해가며 보는 분들이 분명 대단하긴 합니다만 대신 그분들은 영화 자체의 재미, 보고 나서 '아아' 소리 나오는 감동을 위해 보는 건 아니니까 좀 피곤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비난할 건 비난해야 하고 지적할 건 지적해야 하겠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오직 그럴 목적으로 영화를 보는 게 아니니까요.=_=;


그나저나 뎁 씨, 마약중독자 연기는 좀 적당히 했으면 싶어지네요. 리버 피닉스에 대한 트라우마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리버 피닉스는 리버 피닉스고, 조니 뎁은 조니 뎁이잖습니까. 쩝. 뭐 제가 넘겨짚는 거면 상관 없는 일입니다만, 요즘 찍어둔 영화에서 또 마약중독자를 연기한다니까 좀 그렇습니다.-.-;




아, 그렇지. 이렇게 된 거, 일요일에는 <플래툰>을 볼까 합니다. 이것도 <가위손>처럼 초딩 시절 아버지 따라 한번 본 이후로 보지 못했습니다만 기억은 참 오래 가는 영화입니다. 조니 뎁과는 상관 없이 <플래툰>이니까 볼 생각입니다. 베트콩을 숨겨줬다는 이유였나, 아무튼 마을 하나를 마구 들쑤시고 총질하는 병사들을 씁쓸하게 쳐다보던 같은 소대원들, 어딘가 미친 느낌이던 하사관이 좀 이상주의적이던 상관을 쏴버린 후 일부러 적지에 버려두고 탈출하던 장면 같은 건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으음.. 그러니까 요란무쌍한 전쟁 영화도 좋아하지만 반전 영화는 더 좋아하거든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디어 헌터><7월 4일생> 같은 영화들을 보면 대략 정신이 멍해집니다. ...그리고 이런 영화를 열심히 찍어내는 사람들과, 무기 팔아먹고 석유 뺏고 돈줄들 비위 맞추기 위해 전쟁질따윌 결정할 수 있는 작자들이 같은 국적이란 점에서 미국은 참 그레이트한 나라입니다.




p.s. 어헛, 일라이어스와 번즈는 같은 중사였군요. 왜 일라이어스가 상관이라고 그동안 생각했던 건지? 울프 중위가 너무 신출내기라 상관같지 않아서 그랬나...;

 
Posted by 양운/견습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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