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니 뎁!

영화, 뮤지컬 2006. 8. 12. 23:13
8월에 본 영화 목록 (순서대로)

<캐리비안의 해적 : 블랙펄의 저주>
<가위손>
<슬리피 할로우>
<네버랜드를 찾아서>
<캐리비안의 해적 : 망자의 함>
<초콜렛>
<프롬 헬>
<찰리와 초콜렛 공장>

이제 보려고 대기중인 것 : <유령신부> <길버트 그레이프> <비포 나잇 폴스>


...공부 안 하고 뭐 하냐 책망하시면 참 할 말 없습니다만 그게 저 뭐냐 뭐시기... 제가 처음에는 그냥 갑자기 팀 버튼 감독 작품이 땡겼단 말입니다? 그래서 거의 15년만에 가위손을 보고는 대략 정신이 멍해진 상태에서 그 직전에 엄청 웃으며 본 캐리비안의 해적과 뭔가가 겹쳐 보이더니 가압자기 한 배우가 눈에 딱 박혀버렸지 말입니다.

저는, 영화 볼 때 배우나 감독에 얽매이지 않아서(실은 엄청 무관심해서) 뭔가를 감명깊게 보고도 그 이야기만 기억하지 제작자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브레이브 하트>를 수도 없이 돌려 봤건만 멜 깁슨과 소피 마르소를 외우는데 그 후로도 몇 년은 더 걸렸고, 브루스 윌리스 영화만 몇 편을 줄줄이 때리고도 이름자를 외우기는커녕 '아 그 다이하드 형사' 정도의 생각밖에 못 했지요(그 배우들이 연기를 못 한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단지 제가 관심을 갖지 않았을 뿐;). 그러던 제가 배우 하나 때문에 영화를 줄줄이 보는 건 소룡이 형님과 성룡 형님 이후 처음이군요. 그나마 그 두 분은 우리 아버지 취향이라 같이 보다보니 끌려간 건데요.



블랙펄이 처음 개봉됐을 때 저는 사람들의 레골라스 타령(<반지의 제왕> 바람이 부는 내내 배우에 관심 없던 제가 이름을 외울 정도로 시끄러웠지요;)에 질려서 올랜도 블룸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그거 안 보러 갔습니다. 그 땐 석양을 등지고 허리에 두 손 얹고서 정면 어딘가의 허공을 부릅뜬 눈으로 노려보는 몰골 사나운 해적선장이 좀 지독하게 분장한 블룸인 줄 알았거든요. 이미지 변신하려고 노력하는 줄 알았지 뭡니까(...).

예, 처음 블랙펄 개봉했을 때 우리나라 언론의 관심은 조니 뎁이 아니라 올랜도 블룸이었죠. 단지 그가 레골라스였다는 이유로(블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블룸에 대한 실례던데요-_-;).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레골라스 소리는 쑥 들어가고 짹짹 스패로우 이야기만 수런수런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놔! <원피스>가 해적의 로망인 줄 아는 사람들한테는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그건 해적물로서는 <풀어헤드 코코>와 비교도 할 수 없는, 그저 소년물입니다. 해적물이라면! 해적의 로망이라면! 자고로 저겁니다. 법의 세계를 비웃는 범죄자 주제 당당하지 못하게스리 비굴한 눈웃음도 칠 줄 알고, 혀에서는 협잡이 떠나질 않고, 목에 밧줄을 감고도 농담 한 마디 던질 줄 알고, 조낸 비겁하다가도 한 가닥 양심은 있어서 결국 제 무덤 파는 얼간이 해적이 나와야 한단 말입니닷!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초엽 대해적시대의 잔인하고 야비하고 더러운 범죄자들이 우리에게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은 인간 세상을 벗어나 원시에 가까운 바다에 안겨 살면서 매일을 목숨을 건 모험(보물찾기 뿐 아니라 해군에 쫓기는 것도 불만 많은 부하들을 휘어잡는 것도 다 모험이지요)으로 지새야 했던 그들에게 우리가 진짜 '자유'를 덧씌워보기 때문입니다. 캐릭을 분석하면서 뎁 씨는 현대의 락스타를 떠올렸다는데, 바로 그 모습인 것이지요... 덕분에 잭 스패로우가 다른 캐릭들의 개성을 모조리 억누르고 독야청청 빛나버리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그게 어찌 '잭 스패로우'를 해석하고 연기한 뎁 씨 잘못이리오. 그 캐릭 자체가 그렇게 생겨먹은 것을. ;ㅁ; (그러므로 잭 스패로우는 무대광풍이다! ;ㅁ;)



그렇게 해서 한 번 맛을 들인 뎁 씨, 그가 찍은 다른 영화를 계속 찾아보게 만들더이다. 같은 수사관이어도 크레인과 애벌린 다르고 윌리 웡카와 잭 스패로우에 이르러서는 목소리, 억양, 입가의 주름, 손놀림, 심지어 치열(齒列)마저 달라서 전혀 다른 사람 같더군요. <네버랜드를 찾아서> 까지는 은근히 잭 스패로우와 닮은 구석을 찾으려 애쓰며 쳐다봤는데, 그 네버랜드에서부터 제가 바보짓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저는 잭 스패로우가 너무너무너무 마음에 듭니다. 제가 바라던 해적선장의 로망 그 자체였거든요. 그런 고로 다른 영화를 볼 때도 하다못해 잭 스패로우의 걸걸한 목소리 비슷한 어조라도 기대하며 봤는데(에드워드 시저핸드가 술을 레모네이드로 알고 마시는 장면과 크레인이 처음 등장해서 시체를 건져낼 때 한번씩 그 목소리 나오더군요 낄낄), 여기 있는 건 이 작품의 인물인 희대의 극작가 제임스 베리지 다른 영화에 나온 술에 쩔은 해적놈이 아니라는 게 너무도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 배우에 대해서도 저는 타이타닉과 아이언 마스크밖에 몰라서, 길버트 그레이프로 그렇게 재능을 과시하던 '배우'라는 걸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냥 얼굴때문에 나온 줄 알았지요.;)는 한창 성장하던 중에 그 타이타닉을 택하는 바람에 이미지가 굳어서 한동안 다른 배역을 제대로 하질 못했습니다. 반면 조니 뎁은 팀 버튼의 페르소나라는 것 외에는, 조니 뎁 하면 떠오르는 고정된 이미지가 없습니다. 너무도 잭 스패로우가 강렬하기 때문에 한동안 다른 배역과 어울리지 못하는 걸까 싶었지만 블랙펄과 망자의 함 사이에 찍은 다른 영화들을 보면 역시 '잭 스패로우'만 알지 조니 뎁은 모르는 사람한테나 고통스러울 문제일 것 같더군요. 무자수행 소리 나오리만치 괴팍하게 영화를 골라다닌 그는 흥행은 못 한 대신 무슨 배역을 맡겨도 해내는 '배우'가 되었지요.




마야와 아유미를 합쳐놓으면 저렇게 될까요?

마야는 연기가 본능같은 거라 캐릭에 대한 몰입이 대단하고 연기도 그 배역 자체에 동화되어버리는 방식이지요. 아유미는 인위를 거치는 예술이란 걸 아는 인물이라 사고가 좀 정형적인 대신 자신의 뜻대로 해석해서 표현할 줄 알았지요. 조니 뎁은 배역을 바꿀 때마다 유리가면을 쓰고 그 캐릭 자체가 되어버리면서도, 자신의 고민을 가지고 캐릭을 해석해서 자신이 쓸 가면을 직접 만드는 배우입니다. 영화 밖에서 굳혀온 이미지를 영화 안으로 끌고 오는 배우가 있고 배우 개인은 사라진채 배역만 움직이는 배우가 있는데 뎁은 명백히 후자에 속하니 말입니다, 뭘 봐도 어떤 가면을 썼을지 무지 기대되네요.

자아, 그의 출연작으로 약간 이름 있는 것들은 대략 둘러본 것 같고. 이제 슬슬 매니악한 작품들로 들어갈 겁니다. 그러니까 언제 공부하냔 가슴 저미는 말씀은 9월로 미뤄주십사.(.......)




그런데 he is a pirate을 생각하다가 어느 새 십이국기 오프닝 비쥐엠이나 창2 전투 비쥐엠 중 하나와 혼선되는 것 좀 어떻게 했으면 좋겠군요. 색깔도 속해 있는 장르도 전혀 다른 곡들인데 왜 제 머릿속에서에는 저 세 곡이 섞여서 들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크악! =_=;;;
Posted by 양운/견습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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