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TAR TREK : The Original Series (TOS)
닥터 맥코이 역의 드포레스트 켈리가 들어가 있는 걸 보면 시리즈 중후반 무렵의 인트로 아닐까 싶다. 처음에는 커크의 윌리엄 샤트너와 스팍의 레너드 니모이만 인트로에 이름이 올라갔더랬으니까.
커크가 항해일지 서두에 붙이는 저 유명한 말들은 영국의 위대한 탐험가인 제임스 쿡이 어릴 적 일기에 썼다는 말에서 따온 게 아닐까 하고 어떤 제임스 쿡의 팬이 추정하던데, 그렇더라도 이상할 건 없을 거라 생각한다. 아무튼, 미지의 세계를 항해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로망이다. (현실적인 위험성은 일단 제쳐두자. 로망과 판타지는 마음 한구석에 남겨줘야 할 거 아냐. ㅠㅠ) 그래서일까, TOS의 인트로는 우주를 무대로 한 SF활극의 분위기가 강하다. 실제로 TOS의 분위기가 그렇기도 하고.
to boldly go, where no man has gone before!
2. The Next Generation (TNG)
내 안의 제임스 커크는 카우보이스런 모험가인 반면 장 룩 피카드(피카르 아냐?;)는 보다 실존인물 제임스 쿡에 가까운 엄숙한 탐험가+외교관 이미지이다. 커크가 피카드보다 못하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드라마 설정상 커크는 23세기 사람이고 피카드는 24세기 사람이다. 인류가 태양계를 벗어나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던 개척의 시대가 알파 분면 탐험을 대략 끝내게 되어 수교 이후의 관계가 보다 중요해진 시대와 같을 수 없지 않은가. 뭐 그렇더라도 TNG 세계는 여전히 외교보다 모험과 탐험 쪽에 비중이 가지만.
그래, TOS 시대에 이미 태양계 바깥에서 사건사고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TNG의 엔터프라이즈가 태양계를 벗어나 외우주로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트로는 TOS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to boldly go, where no ONE has gone before!
..드라마가 제작된 당시 시대의 변화가 느껴진다. TOS는 60년대, TNG는 80년대이니.
3. Deep Space Nine (DS9)
이건 4시즌 이후의 인트로. 디파이언트가 3시즌에 추가된 고로 그 때까지는 지구의 아무 강 하나의 이름이 붙은 런어바웃 한 대가 정거장과 웜홀 근처를 배회하는 조금 썰렁한 인트로를 썼다. 그쪽을 더 좋아하는 분들도 있지만, 내 경우에는 알파 분면과 감마 분면의 교차로로서 온갖 종족의 우주선이 오가는 분주한 정거장의 이미지가 더 와닿기 때문에 이 인트로를 좋아한다. 취향 문제이긴 하지 뭐.
벤자민 시스코는 3시즌 중반까지 중령이고 기지사령관이었다. 그러니까, 함장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건 트렉 시리즈의 스핀오프란 말이지. -_-; 해서, 커크와 피카드가 항해일지에 읊조린 저 유명한 서두는 여기에서 등장할 여지가 없다. 웜홀 앞 우주정거장에서 꼼짝도 안 하는데 모험과 탐험이 뭐냐 여긴 전쟁하는 것만으로도 바쁘다. 근데 까놓고 말해 보자. 모험과 탐험으로 일단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 후에는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을 것인가, 라는 정치적인 과제가 남게 마련이며 그 중에서도 전쟁은 정치의 연장으로서 언제나 선택지로 고려된다. 이게 다 탐험의 시대의 부산물이라고! -_-; 시대가 하 수상한지라, 앞의 두 함장이 스타플릿 제복만 입었을 뿐 본질적으로 탐험가라면 시스코는 딱 군인이라는 느낌이다. 위치상 정치적인 행동을 할 때가 많은 군인.
브라스의 외로운 울림이 참 마음에 들어...
4. Voyager
개인적으로 보이저에는 그렇게까지 버닝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인트로에 한정시킨다면 가장 인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인트로에서 묘사되는 배경이라면 DS9도 막상막하지만, 보이저는 음악이 장난이 아니다. 처음 들었을 때 곧바로 압도당했더랬다. 와 웅장해라, 우주는 아름답구나... 게다가 캄캄한 밤 홀로 외딴 곳을 방황하는 것 같은 느낌이 보이저의 이미지와 아주 잘 들어맞는다.
보이저는 DS9 근처에 군사임무차 파견되었다가 난데없이 델타 분면으로 날려가 집에 돌아가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해야 했다. 엔터프라이즈의 경우와 달리 모험과 탐험이 이들에게 주어진 본연의 임무가 아니었단 이야기다. 고로, 보이저가 겪는 모험담은 어떤 의미로 집 나가면 개고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제인웨이가 디즈 아 더 보이지스 오브 스타쉽 보이저~ 라고 읊조리면 목소리가 꽤 멋드러지니 잘 어울리겠지만, 내용상 뭔가 어색할 것 같긴 하다. 그 자리에 들어갈 스타쉽은 역시 엔터프라이즈랄까. 게다가 보이저가 지구로 돌아가게 될지 어떨지는 드라마 속 인물들이 알 턱이 없지 않나.(...) 캐스린 제인웨이는 가장이라는 느낌이다. 세상 풍파에 시달리며 꿋꿋하게 애들 키우는 과학덕후 고아원장.(?!?!)
5. Enterprise (ENT)
DS9 5x06 : Trials and Tribble에서 시스코는 사고(?)로 마주친 스타쉽이 첫 번째 엔터프라이즈, 즉 제임스 커크의 배라고 언급했다. 그럼 커크 시대보다 1세기가 앞서는 이 엔터프라이즈는 뭐냐?;;; 클링온의 황당한 외모변천과 더불어 이 역시 땜빵설명이 필요할 것인데, ENT는 아직 1시즌밖에 안 봐서 해답이 나오게 될지 잘 모르겠다. 조나단 아처 하면 한결같이 우주의 부시라는 악평이 자자하던데, 나머지를 다 봐야 뭔가 말을 할 수 있겠지.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1시즌 중반까지 별걸로 트집을 잡으며 트팔의 속을 벅벅 긁어대는 꼴은 딱 부모의 속도 모르는 중딩이었다.
여태까지 트렉의 오프닝 시그널은 말 그대로 시그널이었다. 그런데 ENT에서는 무려 노래가 나온다. 노래 자체는 마음에 들고, 콘티키를 연상시키는 뗏목에서 스타쉽 엔터프라이즈에 이르기까지 탐험의 역사가 좌르륵 펼쳐지는 배경도 감동적이다. 그렇지만 내가 아직까지 ENT에 정도 재미도 못 붙인 탓인지 노래가 나온다는 것에 적응이 안 되는 탓인지 종합적인 감흥은 그저 그렇다.; 아무튼, 좀 더 두고 볼 일.
내가 트렉 시리즈를 접한 순서는 TOS->VOY->DS9->TNG, ENT 였다. TNG는 공중파로 접한 적이 있긴 하니까 이걸 제일 앞에 둬야 하나. 어찌 됐든, 대개의 경우 어미오리에 충성을 바치는지라 접한 순서가 곧 선호순서로 바뀌는 이 내가 트렉에서는 예외를 두게 되었다. 아무래도 내 취향 탓이 큰 것 같다. 모험과 탐험과 항해는 로망이다. 하지만 옴니버스식 구조로 인해 매 에피소드마다 리셋 버튼이 기다리는 해피엔딩은 내 입맛이 아니다. 그래서 에피소드간의 유기성이 강하고 주제의식이 마구 노출되어 있는 DS9을 가장 좋아하게 된 것 같다. DS9 내에서도 TNG 초기의 향취가 강한 1, 2시즌의 몇몇 에피소드들이 내 관심 밖인 것 또한 같은 이치일 것이다. 역시 난 트레키는 아니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