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이 지나고 나면 내가 DS9이라는 드라마에 흥분하고 열광했던 감정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지겠지. 덕후로 보이기 싫어서(...) 계속 미뤘지만, 아주 잊어버리기 전에 지금의 생각과 감정들을 정리해둬야겠다. 지금밖에는 지금처럼 생각하고 느낄 수 없을 테니까.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를 위해 남기는 정리이다. 구글 등지를 검색해 보면 업계 종사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깊이 있는 비평감상을 써낸 분들이 이미 수두룩하며, 정통 트레키도 아닌 내가 거기서 좀 더 깊이 있는 무언가를 남길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혹시라도 뭔가를 기대하고 검색해 들어오신 분들이 있다면 이 더러운 덕후 새퀴는 뭔가효 벙쪄서 백스페이스를 누르시게 될 듯 한데, 그렇더라도 양해 구하는 바이다.
기본적으로 DS9 내의 중요한 역사와 캐릭터 빌딩은 다뤄주되 그 밖에는 내 호불호에 맞춰 에피소드를 고를 생각이다. 그 말인즉슨 약간의 캐릭터 편애가 드러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를 위해 남기는 정리라니까.(...)
...그래. 까짓 카테고리 틀지 뭐.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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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데이트 46379.1~46393.1
힌때 유구한 역사와 문명을 자랑했던 베이조가 카다시아의 50년 식민통치에서 독립했다. 베이조는 연방 소속이 아니지만 카다시아가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다는 현실적 위험 때문에 연방에 지원을 요청한다. 2369년 현재 베이조의 상공을 공전하는 우주정거장 딥 스페이스 나인(DS9 - 카다시안 명칭은 테락 노어)에는 베이조 시민군(대표 키라 너리스)과 스타플릿(대표 벤자민 시스코)이 공존하고 있다. 그 근처에서 이곳 알파 분면으로부터 7만광년 저편의 감마 분면을 잇는 안정적인 인공웜홀이 발견된다. 베이조는 웜홀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웜홀 앞에 DS9을 이전시키고, 이름 없는 약소행성에서 단숨에 전략적 요충지로 부상하게 된다.
식민통치를 경험한 50년 동안 베이조인들을 하나로 묶고 독립에 대한 희망을 붙들게 한 것은 종교였다. 그들이 신으로 섬기는 '예언자들'은 이 웜홀을 만든 외계인들로, 시간을 비선형적으로 경험하기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관념이 다르다. 우리의 가련한 홀아비 벤자민 시스코는 어린 아들 교육 걱정에 웜홀 따위 어찌 됐든 전역할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이들에게 귀를 딱 잡혀 DS9에 눌러앉게 되었다.(...) 웜홀을 발견하고 예언자들과 대화까지 나눈 그는 베이조인들로부터 예언자들의 '특사'로 모셔지게 된다.
-베이조와 카다시아, 그리고 연방의 관계는 한국인들에게 매우 친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이것은 1945년에서 1950년 사이 대한민국의 상황 아니던가. 베이조가 한국, 카다시아가 일제, 연방이 미국이라고 생각해도 상당한 부분에서 들어맞는다. 게다가 한반도는 미국의 자본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가 대립하는 각축장이었으며 대륙과 해양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이런 걸 보면 제작진이 한국사를 바탕으로 제작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 다만, 카다시아는 연방에 집적거렸다가 본토에 치명타를 맞고 물러난 것이 아니라 베이조의 미칠 듯이 끈질긴 투쟁을 감당하지 못해 포기하고 떠난 것이었다. 베이조는 나름 자력으로 독립을 쟁취한 것이다. 때문에 연방의 군정(우리 식으로 보면 미군정) 따위는 애초에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고, 여기서 소련 역할을 할 존재도 없기 때문에 이념대립 내지 분단 역시 논외다. 괴, 굉장히 부럽다.
-같은 선상에서, 전직 독립투사(테러리스트) 현직 베이조 군인인 키라는 연방에 대해 고까운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카다시아는 베이조에서 물러나는 순간까지 가치있는 것들을 철저하게 약탈했고(역시 한국에는 친숙한 이야기다 ㅋ) 베이조 내에서는 카다시아라는 공공의 적을 잃은 수많은 독립투쟁단체들=정치세력들이 나약한 '임시정부'를 우습게 여기며 세력다툼을 하기 바쁘다.(아, 이 친숙한 향기란 ㅋ) 베이조의 국력이 빈사상태인 지금 카다시아라는 현실적인 위험 때문에 연방에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지만, 여우가 물러난 곳에 호랑이 불러들인 꼴이 되지 않을까 의심 한 번 하지 않는다면 저런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을 것이다. 스타트렉의 연방 속 지구인들이 의식적으로 너무도 개화되고 진보된 사람들이라 키라의 의심이 기우로 끝날 수 있었지만, 21세기의 마인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더라면 얄짤없이 연방에게 '종속'당했을지도 모를 일.
-예언자들=웜홀 속 외계인들은 앞으로도 DS9의 줄거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들이 이 이야기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건지 잘 모르겠다. 우선 신학을 전혀 모르는 데다, 예언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때마다 이야기가 신비주의적인 분위기로 날아가버리기 때문이다. 나중에 5x10 Rapture 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예언자들은 인간 내지 베이조인들의 능력과 논리로 충분히 내다볼 수 있는 것들까지 '예언' 한 마디로 비약시켜 버리곤 한다. 이 키워드가 의미하는 바를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파운더와 보타&짐하다의 관계를 비교묘사하는 존재로 보기엔 플롯에 대한 영향력이 지나치고, 그렇다고 예언자들과 시스코의 관계에 집중해서 보더라도 DS9이라는 서사극은 벤자민 시스코라는 추즌원의 에픽 내지 사가 정도로 축약될 수가 없다. 다뤄지는 주제와 소재와 이야기들 중에는 시스코의 손을 떠난 곳에서 벌어지는 것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예언자들이 객관적으로 그들과 아무 상관이 없을 베이조를 그리도 알뜰살뜰하게 보살피는 이유 또한 모르겠다. 아무튼 神이라서 그렇다는 것인가? -_-;
애초에 7시즌까지 쭉쭉 뻗어갈 게 아니라 TNG가 쉬는 동안 땜빵할 의도로 제작된 탓에 짜깁기를 하다 보니 이렇게 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좀 하고 있다. 그 증거 중 하나는 보그에 동화당한 시절 자신도 모르게 저지른 일로 일개 중령한테 된서리를 맞는 장 룩 피카드. 시스코가 피카드한테 열받는 게 인간적으로 당연하긴 한데, 이 두 인물의 관계는 이후의 줄거리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예언자들과 트라우마 상담(?) 한 번 한 걸로 피카드에 대한 악감정을 푼 것 또한 말이 안 된다. 어쩌라고.;;;
-DS9의 주요인물들은 성격이 대단히 입체적이다. 인물의 성격이 입체적이란 말은, 중고등학교 시절 배운바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성격이 변한다는 이야기다. 1시즌 최초의 모습과 7시즌 마지막 모습을 비교하자니 절로 웃음이 나오누나. 그 중에서도 괄목상대할 만한 변화를 겪는 인물들로는 키라, 오도, 바시어, 페렝기 패밀리, 그리고 나중에 언급할 더마아가 있겠지.
이 때의 키라 너리스는 완고하고 까칠하고 뻣뻣하고 불같아서 마음에 안 드는 상황과 맞닥뜨리기만 하면 일단 분통을 터뜨리고 다녔다. (이유없이 화를 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화를 정말 못 참는 편이었다) 카다시안에 대한 증오는 또 어찌나 극렬한지 누가 앞에 있으면 주먹부터 뻗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괴로워할 것 같았다. 베이조인들이 기질적으로 한국인처럼 -_-;;; 타고난 열혈인데다, 반평생을 신념 하나에 목을 맨 독립투사로 보내고 난 결과였으리라. 이런 그녀에 대한 내 첫인상은 그다지 친해지고 싶지 않다는 것, 그리고 시스코가 힘들겠다는 것이었다. 일단은 기지의 부사령관이 키라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 마주쳐야 하는 데다, 애국자들의 단점은(장점이기도 하지만) 타협을 모른다는 것이니까. 이랬던 그녀가 훗날 어떻게 은하계의 절반을 구하는지 두고 보자. -_-*
유유상종이라고 키라의 절친이었던(...) 오도 역시 완고하고 까칠하고 뻣뻣하고 불같았다. 이쪽은 참을성이 대단히 좋은 편이라서 분통을 터뜨리는 대상이 (그의 기준으로) 범죄자와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로 한정되어 있었을 뿐이다. 이 때에는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 전혀 모르는 데다 휴머노이드의 사회 어디에서도 결코 소속감을 느낄 수 없는 아웃사이더였기에, 자아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 자신의 직업과 정의에만 천착하는 외골수가 되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제작자들이 처음에 의도했던 이미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그럼 더티 해리?!)였다지만, 내가 보기엔 딱 위고 대선생님이 미카엘 천사장으로 묘사했던 그 자베르 경감이다. 매달리는 것이 형식적 제도냐 실질적 정의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이랬던 그가 훗날 어떻게 은하계의 절반을 구하는지 두고 보자. -_-* (2)
스타플릿 의학부를 막 졸업하고 자원해서 DS9에 배치된 줄리앙 바시어는 첫 등장부터 자뻑과 삽질에 여념이 없는 애송이였다. 초면부터 잣지아한테 들이대는 것하며 키라 앞에서 말을 가리지 못하는 것 하며;;; 잣지아는 300년의 연륜이 있기에 적당히 놀아주는 여유를 보였다만, 키라의 경우에는 잘도 참았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 바시어가 방정맞게 군 것은 사실이나 그를 탓하기만 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은 든다. 이 당시 베이조는 이념대립만 없을 뿐 50년대 대한민국의 모습 그대로였다. 알파 분면 전체에서 잘 나가는 연방에서 자란 포부 큰 젊은이가 보기에 자신이 선각자 내지 계몽자 같은 입장에서 한 몸 불살라 신화적인 업적을 이뤄야 할 것 같은 사명감 같은 것을 느꼈다 해도 비정상적인 상상은 아닐 것이다. 그걸 베이조인 앞에서 입 밖으로 낸 게 주책이지. 이랬던 그가 훗날 어떻게 간지를 뿌리게 될지 두고 보자. -_-*
페렝기 패밀리에 이르러서는... 아아 쿼크! 아아 롬! 아아 노그! 아아 페렝기! ㅠㅠ 1시즌 초입 첫등장에서의 그들은 도둑놈 사기꾼 도박쟁이라는 당시까지의 페렝기에 대한 이미지에 충실했다. 정진정명의 쿼크는 그렇다 쳐도 롬마저 어딘가 사아칸 페렝기의 향기가 뚝뚝 묻어난다.(아마도 당시 롬이라는 캐릭터의 빌딩이 덜 되어있던 탓이겠지만 넘어가자) 아니 다른 건 둘째 치고.... 쿼어어어어어크! 비록 마음 속 어딘가가 물렁해지더라도 끝까지 페렝기답게 사아칸 자본가로 남아줘! 페렝기의 희망은 그대 뿐이야 ㅠㅠ
두캇은 이때나 나중에나 두캇스럽구나. 끝까지 이 밉살스러우면서 묘하게 매력적인 모습을 견지했더라면 최고의 악역으로 기억되었을 텐데, 두캇의 원수는 정녕 시스코로다.(...)
-그나저나 수염 없고 머리에 털 난 시스코는 뭔가 적응이 안 되네. 이건 마치 수염이 없는 라이커 같은? -_-;
Posted by 양운/견습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