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이러세여? 나 사표 썼거든요? 댁들이랑 이제 관계 없거든요?"
"닥치고 돌아오셈!"


52화에서 깜놀한 부분

이 제갈량이 어떤 인물이고 그간 왜 그렇게 어리버리했는지 이제 좀 알 것 같다. 한 마디로 소녀였구나.;;;

이렇게까지 여리여리하고 사회경험 부족으로 인간관계에 치여 힘들어하는 제갈량은 처음이다. 연의에 기반하는 2차창작물은 보통 관장이 박망파 후로는 말을 잘 듣거나(대부분의 제갈량) 거의 유비 수준으로 제갈량을 둥기둥기 아낀 것 같다.(ex) 금성공명, 북방선생 버전) 해서 유비 살아생전의 제갈량이라 하면 대개 내부적인 문제에 연연할 것 없이 신나게 천하를 주무르며 노는 "강자"로 묘사된 것 같다. 한편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웹 팬픽셔너의 제갈량 같은 경우에는 기본적으로는 여리여리하고 사회경험 부족으로 인간관계에 치여 힘들어 하지만, 압력이 가해지는 만큼 용수철처럼 반발하는 성깔이 있는 데다 그 와중에도 엄청나게 강력한 인간적인 유대를 만들어가는지라(→상산의 그 남자) 신품의 제갈량같은 연약한 인상은 전혀 없었다. 한 마디로 그 제갈량도 강했다. 모름지기 제갈량은 강해야!! 건담이어야!!(?) 라는 생각이 언제부터 내 머릿속에서 당연시된 걸까?(...) 그래도 그렇지 관장의 등쌀을 못 견뎌 사회물은 다르근영 전 안 되겠어염 ㅠㅠ 라며 관인을 매달아놓고 가출(본인은 낙향이라고 주장하겠지만 아무리 봐도 가출이다)하는 제갈량이라니 참으로 진기한 것을 본 기분이다. 너무 소녀심 돋는걸?;;;
관장이 제갈량을 시집살이 시키는 설정을 넣는다면 타국에 비해 집안이 화목한 이미지인 촉을 사람 사는 데 다 거기서 거기 -ㅅ- 라는 신조 하에 난장판으로 만들 수 있을 터이다. 특히 이릉 전후를 아주 비장하고 비극적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겠지. 그런 안배를 깔아놓고 진행하는 거라 믿고 싶다. 단지 신품의 관장이 형님의 명령 없이도 진심으로 감복해서 제갈량을 따르게 만드는 과정만을 묘사하고 끝내기엔 아까운 설정이다.


한편으로 이 제갈량의 한계.. 랄까 그런 것이 보인 것도 같다. 주유가 유비를 동오에 붙잡아둔 채 형주 뒷치기를 노리는 상황이었다. 제갈량은 주유 몰래 유비를 모셔가기 위해 군사작전을 해야 했다. 당연히 만사가 극비리에 진행되어야 했겠지. 유비의 안전귀환에 총책임을 진 조운 외에는 제갈량의 계산을 함부로 밝힐 수 없었을 거란 이야기다. 한편으로 관장이 보기에 유비가 부재 중인 유비 패밀리에서는 주군의 의형제들이 만사를 주관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어느 날 굴러들어온 군사란 녀석이 그 불문율을 와장창 깨고 병사까지 쓰지 않는가. 제갈량의 고려에서 소외된 관우 장비가 그들 몰래 황충 위연의 군사를 빼돌린 제갈량을 추궁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애초에 관장이 제갈량을 의심하게 된 것은 생판 알지도 못했던 애송이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명령하면서 설명을 첨부하지 않는 탓이었다. 제갈량은 거기에 대해서 아무 배려도 하지 않았다. 의형제라 하는 인간적인 유대관계로 맺어진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것이 통하지 않는 게 상식인 조직, 즉 "국가"를 세우려는 사람이 가치관 차이로 충돌하는 거라 보고 말기엔 안타까운 점이 여기에 있다. 관장이 넷째 형제로 인정한 조운은 왜 예전부터 관장과 달리 제갈량의 말을 잘 듣고 있나. 조운 쪽에서 먼저 제갈량을 이해해보려 노력했고, 그래서 제갈량도 조운에게는 이유를 설명해줬다. 조운은 그 때 제갈량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때문에 믿고 하라는 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이다.(어제 방영분에서는 의심받지 않고 형주에 다녀가기 위해서였다지만 억울한 매를 서른대나 맞았다. 그럼에도 나는 군사를 믿고 있음ㅇㅇ이라는 그 시선교환은ㅠㅠ)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조운처럼 행동하진 않는다는 거지. 제갈량이 명령할 때마다 일일이 설명하는 건 더더욱 어불성설이고. 관장은 기존에 지닌 지위와 힘이 있었으니까 그 불만을 직접 표출했지만 앞으로 제갈량 밑에 들어갈 사람들은 그러지도 못하면서 불만만 쌓아갈 수가 있다. 관장은 결국 제갈량을 이해했지만 끝내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 또한 있을 것이다. 음, 어디선가 자오곡 떡밥의 스멜이 느껴지는걸? -_-
그 야밤의 독대 때 제갈량이 왜 그리도 조운을 그윽한 눈길로 전송했는지 이렇게 설명이 되는구만. 이 시점으로부터 20여년 후 오장원을 바라보는 외로운 승상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이고 ㅠㅠ



p.s. 그나저나. 제갈량을 존형이라고 불렀던 백미가 할 법한 역할을 이때에는 아직 꼬꼬마였을 등산가새퀴가 다 하고 있으니 대략 조치안타. 가정에선 또 어떤 헬게이트를 열어 보이려고? -_-
Posted by 양운/견습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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