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 감독이 만들고 싶었던 <배트맨>이라는 영화는 역시 <비긴즈>였던 것 같습니다. 비긴즈-다크나이트-라이즈 의 주제에는 변증법적인 흐름이 있습니다만, <라이즈>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다크나이트>가 아니라 <비긴즈>를 다시 보고 싶다는 것이네요.
물론 <라이즈>는 <다크나이트>에서 제기될 수 있는 의문 - 거짓으로 지켜지는 평화 혹은 정의의 위태로움에 대한 놀란의 답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내 꾀죄죄하고 구질구질한 역할을 떠맡아야 했던 고든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열혈경찰 블레이크보다는 이쪽이 더 설득력있지요. 배트맨과 선한 하비 덴트가 공동으로 지향했던 고담의 수호자상도 사실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은 배트맨 같은 다크나이트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되어버리는군요. 시리즈 자체가 "배트맨" 영화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다크나이트>의 어둠이 <라이즈>에까지 드리워진 것일까요? 만일 히스 레저가 살아있었다면 <라이즈>에서도 조커가 등장했을까요? 그 경우에는 시리즈가 어떤 방향으로 결론이 났을까요?
애석하게도, 저는 <다크나이트>에서 엄청난 감동을 느낀 취향인지라 <라이즈>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비긴즈>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끝맺는 마지막 작품으로는 나쁘지 않았음에도요. 놀란에게 있어 배트맨 영화로서의 <다크나이트>는 여러 의미에서 freak이 될 것 같습니다.
여담인데,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도 좀 생각났습니다. 부정적인 의미에서요. 놀란이 상당히 현실적인 세계관을 가져오는 바람에 <다크나이트>에선 홍콩이 등장하고 <라이즈>에선 미국 국가가 울려퍼지는 상황입니다만 브루스 웨인은 자신이 그 아메리카 합중국 어딘가에 있는 한 도시에서 좋은 '왕' 노릇을 하려 애쓰는 것 같군요. 알프레드가 이렇게까지 본심을 토로하는 일이 놀란 이전을 포함한 역대 배트맨 시리즈에 있었던지? -_-;
p.s. 놀란 감독은 크레인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님?ㅋㅋ
p.s.2 앤 해서웨이 하악하악 <배트맨2>의 캣우먼이 너무나 매력적이었기에 걱정스러웠는데 기우였네요. 잭 니콜슨의 조커와 히스 레저의 조커가 다르듯 미셸 파이퍼의 캣우먼과 앤 해서웨이의 캣우먼은 다릅니다. 다만, 이 차이가 조커의 경우와는 달리 세계관 자체가 다르다는 데서 덕을 보는 면이 큰 건 아닌지 약간 의심스럽습니다. 캐릭터적으로 배트맨보다도 우위에 선 채 영화를 지배했던 미셸 파이퍼의 캣우먼과 비교하면 이쪽은 많이 약한 느낌입니다. <라이즈>의 캣우먼은 내러티브 면에서 그런 존재감을 다투는 캐릭터가 아니기에 해석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아니면 감독이 문제던가. 당신 여캐 묘사에 자신 없지? -_-;
그러고 보니 <라이즈>에서 캣우먼이라는 단어는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p.s.3 이건 어쩌면 중대한 미리니름이므로 줄 바꿔서 쓰겠습니다. 스포가 싫은 분들은 망연히 죽죽 읽지 마시고.
지인 중에 조셉 고든 래빗의 팬이 몇 분 계십니다. 그분들 중 역대 시리즈를 모두 볼 정도로 배트맨 시리즈도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번 <라이즈>를 보고 살짝 안도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간 그때 그때 생각나거나 의문이 들었던 걸 트위터에 끄적거렸다. 트위터의 특성상 트윗한 혼잣말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절로 뒷구석에 밀려나게 되었다. 어딘가에 뱉은 말과 생각이 가볍게 묻힐 수 있다는 것이 그 말과 생각의 내용까지 가볍게 만드는 것 같아 썩 바람직하게 여겨지진 않았다. 해서, 앞으로는 트윗에 삼국지 관련으로 혼잣말하는 것을 삼갈까 한다. 물론 시간과 함께 잊혀지는 편이 좋은 뒷세계의 德談은 아페로도 꼐쏙 트위터에 버릴 생각이다. 화봉요원 전개와 관련된 신맛 나는 김칫국이라던가 모 인사들에게 조공을 바치는 거라던가 뭐... 그러하다.(...)
7.16 가만 보면 장비도 정체를 알 수 없다. 평화에선 주인공, 연의에선 시커먼 산도둑 같이 생겨먹어서는 사납고 순박한 싸나이 연인 장익덕이란 이미지라 뭔가 친서민적인 인상인데, 실존인물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단 말이지. 장씨가 죽자 후주가 그 동생을 다시 비로 맞았으며 둘 다 황후였다는 게, 단지 예뻐서는 아니었을 거라는 거지. 하후패에 대한 대접도 그렇고. 위략의 장비로리콤설은 스포츠허도의 특성을 좀 감안하고 봐야 하겠지만 여기에도 일정부분 떡밥이 있는 듯하고.. 관씨네는 근거지(?)인 형주를 잃고 기대주인 관흥까지 요절하고 나서 상대적으로 약해진 느낌인데 장씨네는 촉 멸망까지 위상을 유지했다. 그건 장비 자신의 힘인가? 아니면 하후씨의 힘인가?
7.5 계한보신찬 보면 조운과 진도를 군사 및 위상 면에서 쌍으로 보는 느낌이라, 부부인증 제대로 하려면 진도의 위치 및 역할에 대한 고찰이 보충되어야 할 듯. 근데 사료부족ㄷㄷ 진도는 건흥 초 영안도독 정서장군 됐음. 호군 진도가 이엄 통솔 하에 영안에 주둔한 건 제갈량 한중출병 무렵이니 227 전후라고 봐야 할 듯. 그럼 진도가 영안도독 정서장군 된 것도 그 무렵? 진도를 이엄 휘하에 둔 건 유비가 아니라 공명의 뜻인 듯. 마누라설 전제할 때 진이 이엄 밑에 간 건 나름 제갈+조 같은 역할 기대한 거일 순 있음. 유비 오래 따른 구신이 형주 이후 영입자이자 탁고대신과 쌍으로 묶여 보좌한다는 의미도 되고, 서열정리도 됨. 진의 벼슬은 항상 조 다음이었음. 근데 역시 계한보신찬의 인평이 걸리네. 관장 다 죽은 때에 신야 기준으로 올드비/뉴비 나누는 것도 어색하고. 1차북벌 땐 아직 10대후반 내지 20대 초반이었을 양희가 형주 시절부터 이어진 조 역할의 진가를 실감하지 못했을 수 있다 쳐도..
6.24 한나라에서는 대장군이 출정나갈 때 밑에 중호군을 한 명 뒀다. 중도호가 영안에 짱박힌 동안 중호군은 촉군의 핵심인 북벌군을 따라갔단 말이다. 그러니까 누누이 하는 이야기지만 223년부터 234년까지 사실상 대장군 노릇하는 게 누구냐면(...) 운별전을 신뢰한다는 전제지만, 조운은 계양태수부터 시작해서 죽을 때까지 업무관계상 제갈량과 붙어다니는 인생이었던 것 같다. 일화 한 토막이라도 전해질 법한데 아무 소리 없는 게 안달나지만, 아무튼 그러하다.
6.13 從事와 從士는 다르구나. 전자는 지방관 등등의 속관이고 후자는 호위 개념인가... 역시 서타 외엔 從士로 검색되는 사람이 없네. 그럼 빼도 박도 못하게 말단병졸이었을 것 같은데, 왜 그런 사람이 조조 암살을 획책했을까. 상상의 여지가 무궁무진하다. 관도 무렵이니까 원소측 암살자인가 싶어도, 평범하게 행동하지 못해서 허저한테 딱 걸린 걸 보면 그쪽은 아니고 그냥 평범한 병사 아니었을까 싶은데. 당장 떠오르는 게 서주, 민둔 이런 것들이네. 유비 허도시절 팬픽질 준비할 때 망상한 건 좀 다르지만ㅋㅋ 그땐 여남 등지에서 본래 허저를 따랐던 협객 다수가 조조의 호위병으로 들어간 것 + 민둔 조세 50프로 + 병호제 초기단계 + 마성의 ㄱ..유느님이 복합작용한 걸로 마구 망상해봤더랬다. 이젠 그거 팬픽질할 생각이 거의 없으니 마구 떠드는 거임요 갤에서 누군가가 서타에 대해 질문한 걸 보고 생각나서 괜히 끄적여봤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갤 들어갔는데 자꾸 팅해서 글 한 편 읽기가 어렵네. 왜 이러지
6.13 (→6.7 트윗에서 계속) 이때 224년의 촉나라 정부가 붕괴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울 승상 찬양글을 800개는 써야 할 것 같은데 일단 그건 치우고, 이런 상황이니까 동오사신행→죽으라고? 이런 분위기는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다들 가기 싫어 눈치볼 때
야생의 등백묘가 승상한테 직접 찾아가서 사신이나 보내여! 같은 용감무쌍한 소릴 했으니 옳다꾸나 저분을 사신으로 보내라는 전개가 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용감무쌍한 등백묘한테 기름솥 전설이 따라다니는 것도 그럴싸하고
6.12 이민족과 중국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다룬 책이 필요한데. 특히 한대를 봐야 하는데 이걸 어디서 찾누. 아오 그때그때 메모 좀 해둘걸. 기본적으로 동이서융남만북적 아닌가? 천수 서쪽 이민족은 통칭해서 융이라 하지만 강족은 그것과는 별개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럼 강족, 저족은 분류가 아예 다른가? 마초는 융족에 의지해 조조한테 덤볐고, 또 장완은 강족, 호족이 한을 그리워한다는 투로 말하던데, 그러니까 한.위 양대에 걸쳐 그쪽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리퀘를 하고자 하나 대략 혼란스럽사옵니다;;;;
6.7 건안19년(214) ... 선주는 또 익주목을 겸했다.(선주전) 거기에 한중왕 등극 때 올린 표를 보니 "좌장군 영 사례교위 예, 형, 익 삼주목 의성정후"가 공식직함이었던 모양이다. 형주는 관우가 진수하고, 예주는 조조땅이니까 패스하고, 익주는? "...역참을 통해 좌장군, 의성정후의 인수는 반환해 올립니다." 한중왕 선언 때 군사권을 가진 주목 자리는 포기 안 했다. 아마도 유비 생전에는 직접 익주목 노릇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럼 입촉 직후 제갈량의 업무범위는 어떻게 되는 거지? 좌장군부의 일이란 게 대체?? 근데 유비가 사례교위라니 뭔가 웃기네. 이건 유비 입촉 직후 유장이 맘대로 추천한 건데 한나라에서 승인하긴 했다는 건가? 아니면 레알 자칭인가? 하긴 형주목부터는 자칭이다만. 근데2 사방장군 정도만 되어도 부를 개설할 수 있는 건가? 아니면 이것도 유비가 맘대로 한 건가? 관직 이야기만 나오면 하나도 모르겠네 아오;;; 근데3 유장전 말미를 보니 야 이거 상당히... 우와 이거... 223년 여름 유비 사망, 비슷한 때 유장 사망 -> 옹개의 남중 반란, 손권은 유장의 아들을 익주자사로 임명해 교주와 익주 경계에서 살도록 함 -> 겨울, 등지 보내 화친 성공 -> 225 봄 승상 남4군평정, 유천은 오나라 복귀 화친은 하되 오에서 임명한 익주자사를 반란지역 가까이에 계속 박아놔다고? 야 이거. 우와 이거 점점. 224년의 승상은 어떻게 버틴 거야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아무튼 제갈빠 해야 할듯. 물론 1순위는 언제나 상산남자입니다만 그것과 이것은 별개입니다.
5.23 계교에서 공손찬군 편성을 보면 군사 3만이 방진 치고 "돌격기병 1만 필을 나누어 익군으로 좌우에 두었"다는데(후한서 원소전) 그 돌격기병이 백마의종을 연상시킨다. 궁술에 정통한 자 ... 모두 백마에 기승하여 좌우로 날개처럼 펼친 진형으로 다녔다. 이로써 백마의종을 자칭하였다.(후한서 공손찬전) 그럼 백마의종은 보통 ^ 형태로 활 쏘면서 돌격했다는 건가? 국의가 선봉으로 나온 손찬이횽네 기병을 달랑 강노병 1천으로 바른 과정을 보면 "방패 아래 엎드려 있다가 일시에 모두 발사했다"는데.(후한서 원소전) 국의가 손찬이횽한테 대응한 방식이 본래 북방 기마민족 상대할 때 써먹던 방법 응용한 거라고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암튼 선봉으로 나온 기병이 백마의종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게, 우선 그게 손찬이횽의 트레이드마크고, 국의가 방패부터 들게 했으니까. 백마의종이 벵가드로 다다다다 돌격하면서 활을 쏘는 동안엔 방패로 막다가 근접거리가 되었을 때 갑자기 노를 쏴버려 말이고 사람이고 날려버린다, 는 느낌인가. 기병은 속도와 단체행동이 생명인데 근접거리에서 강노가 갑툭튀해 쏴대면 전열이 흐트러지고 앞이 막히면 뒤에서 달려오던 기병이 우왕좌왕하고 사기가 꺾이고... 음 1천으로 1만을 바른 건 그런 식으로 전개되진 않았을까?
이번 주 연재분은 버릴 컷이 하나도 없구나. 이제 이릉이다. 촉빠에게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지?
p.s.
아직 출발도 안 한 이 타이밍에 다른 이도 아닌 저 두 사람한테 영안 탁고 비스무레한 걸 했다는 건, 최작가 보시기에 이릉 대전이란 순수하게 도원의 의에 의지해서 밀고 가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건가 보다. 나는 지난 몇 년 간 삼국전투기에서 봐온 유비 캐릭터의 행태가 워낙 부정적인 의미로 인상적이던 탓에, 그토록 놓질 못하던 천하를 대번에 손에서 놓아버릴 정도로 슬퍼하는 지금이 순순히 납득되진 않는다. 물론 역사 속의 실존인물 유비가 조운으로 대표되는 중신들이 그렇게 반대했는데도 출정한 이유에 대해 단지 관우의 복수 때문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촉과 융중대에 있어 형주 상실이 갖는 의미, 관우로 대표되는 유비 패밀리의 의협 출신 올드비들과의 정치적 문제, 참 어정쩡한 타이밍에 제대로 뒤통수를 친 前 동맹에 대한 외교적 응징, 실제로 촉이 이길 가능성, 마지해지려면 별 이야기가 다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열광하는 '삼국지'는 그런 것이 아니다. 도원의 의의 로망이고 성자필멸의 로망스이며 결국 실패하게 될 영웅들이 죽을 힘을 다해 살아간 '이야기'다. 도원결의 자체가 연의의 허구라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가을바람 부는 오장원에서 우리가 문득 돌아보는 것은 복숭아꽃 떨어지는 도원이 아닌가. 감히 단언하는데 그 순간 유비가 동오를 택하지 않았다면 삼국지는 지금 정도의 레전드가 되진 못했을 것이다. 정사와 연의 양자를 아울러서 하는 이야기다. 최작가는 그걸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최작가 칭찬한 일은 거의 없는 것 같은데 이런 소리 하는 것은 딱히 위 짤에 나도 헉 해서가 아닙니다. 정말임.(...)
p.s.2 근데 승상을 왜 군사라 부르는 거임? 당신 이제 한중왕이 아니라 한소열이거든여? 의도적으로 군사라고 부른 거라면 육의공명이 비 맞으면서 주공!!! 을 외치는 장면을 연상하라는 건가.
p.s.3 이 무렵을 다루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매주 영웅유닛이 죽어나가는구나. 잘가시오 마맹기. 군웅으로서는 좋아할 수가 없는 인물이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연민합니다.